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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636

남북분단의 상징적 장소, 임진각(臨津閣)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에 위치한 임진각(臨津閣)은 휴전선에서 남쪽으로 약 7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남북분단의 비극적 현실을 상징하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임진각 내에는 초록의 잔디광장으로 조성된 평화누리공원과 더불어 6.25전쟁 중 피폭 후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었던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임진강과 자유의 다리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그리고 각종 전적비(戰跡碑)와 희생자 추모비ㆍ위령탑 등이 있다. 평화누리공원은 2005년 세계평화축전을 계기로 조성한 공원으로, 형형색색의 바람개비와 ‘통일부르기’ 조형물이 자리한 바람의 언덕, 2만 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음악의 언덕, 그리고 갖가지 수초들이 자라고 있는 연못과 카페 건물 등이 있다. 평화누리공원의 바람의 언덕에 설치된 형.. 2022. 9. 26.
벽초지수목원에서 만나는 그윽한 꽃향기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창만리에 위치한 벽초지수목원은 전국 각지의 소나무와 1,400여종의 식물을 비롯하여 설렘의 공간ㆍ감동의 공간 등 6가지 테마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설렘의 공간은 수목원을 들어서면서부터 펼쳐지는 꽃들의 향연으로 놀라게 되며, 밫솔원ㆍ여왕의 정원ㆍ하경원 등의 정원에서 화사하고 화려한 꽃향기를 즐길 수 있다. 빛솔원은 우뚝 솟은 두 그루의 소나무와 함께 계절별로 다양한 식물과 꽃들로 빛이 나는 정원이며, 하경원은 시원한 그늘에서 여왕의 정원을 한눈에 관람하면서 음지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정원이다. 여왕의 정원은 시대와 시간을 초월한 여왕의 위대함과 화려함을 화단에 어우러진 교목과 관목들과 함께 흑현무암으로 조성된 꽃밭 위에 관목ㆍ교목ㆍ야생화ㆍ그라스ㆍ초화류의 식물로 표현한 아름다운 꽃정원.. 2022. 9. 20.
벽초지수목원 연화원의 화려한 수련(睡蓮)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창만리에 위치한 벽초지수목원은 한국적인 정원과 유럽 스타일의 정원을 함께 조성한 수목원으로, 감동의 공간ㆍ설렘의 공간 등 6가지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벽초지수목원 내에는 전국 각지의 소나무와 1,400여종의 식물을 비롯하여 계절별 축제도 마련되어 있으며, 자연과 사람이 하나 되는 수목원이라고 한다. 벽초지수목원 감동의 공간은 수양버들과 능수버들이 늘어져 있는 벽초지를 중심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는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깃들어져 있는 공간이며, 동양의 지베르니 정원이라고 불릴 만큼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벽초지 연못 내에는 수련(睡蓮) 등 다양한 수생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연화원을 비롯하여 벽초지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벽초폭포, 정원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오래된 정자 파란.. 2022. 9. 19.
효행(孝行)문화를 선양하는 근본도량, 용주사(龍珠寺)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송산동에 위치한 용주사(龍珠寺)는 신라 말기인 854년(문성왕 16년)에 염거화상(廉巨和尙)이 갈양사(葛陽寺)로 창건하고, 952년(광종 3년)에 소실된 갈양사 옛터에 창건된 사찰이라 한다. 용주사는 기록에 의하면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정조대왕과 효의황후(孝懿皇后)의 위폐를 모시고 일 년에 여섯 번의 재(齋)를 모셨으나, 1907년을 끝으로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다고 한다. 용주사는 1790년(정조14년)에 갈양사 옛터에 145칸의 사찰을 중창하여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에 명복을 빌어주는 원찰(願刹)이었다고 한다. 정조의 능에서 1.5km인 용주사를 증축할 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목판에 새겨 보존하도록 명을 내리고 당대 제일의 화가인 김홍도에게 맡겨 아름답.. 2022. 9. 16.
사도세자 장조와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의 능, 융릉(隆陵)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자리한 융릉(隆陵)은 사후 왕으로 추존된 장조((莊祖)와 그의 비(妃)인 혜경궁 홍씨 헌경왕후(獻敬王后)의 합장릉으로 사적 제206호이다. 장조의 무덤은 원래 경기도 양주의 배봉산(서울 휘경동) 아래에 있었는데 정조가 수원화산으로 이장하면서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고, 장조로 추존된 후에는 능호를 융릉(隆陵)으로 높였다. 장조는 1735년(영조 11년)에 창경궁에서 태어나 그 이듬해에 세자에 책봉되었고 1749년(영조 25년) 부왕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다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노론들과 정순왕후 등의 무고에 의해 1762년(영조 38년)에 뒤주 속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세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고 묘호를 수은묘(垂恩廟)라 하였으며, 정.. 2022. 9. 15.
정조와 효의왕후의 능, 건릉(健陵)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자리한 건릉(健陵)은 정조(正祖)와 효의왕후(孝懿王后)의 동릉이실(同陵異室) 합장릉이며, 병풍석 없이 난간만 두르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융릉(隆陵)의 예를 따랐다. 건릉은 원래 생부인 장헌세자(莊獻世子)의 현릉원 동쪽에 능을 조성하였던 것을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1821년에 현재의 위치에 이장하여 효의왕후를 합장하였다. 건릉은 합장릉이지만 혼유석(魂遊石) 1좌만 놓았고 장명등(長明燈)을 세웠으며, 문무석의 조각이 사실적이고 안정감이 있는 빼어난 작품으로 19세기 능석물제도(陵石物制度)의 새로운 표본을 세웠다고 한다. 건릉은 동ㆍ서ㆍ북 3면에 곡장(曲墻)에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석물은 난간석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4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 2022. 9. 14.
조선말 전형적인 한옥건물 기로소(耆老所), 남양풍화당(南陽風化堂) 경기도 화성시 남양동에 위치하고 있는 남양풍화당(南陽風化堂)은 조선시대 유일하게 남아 있는 남양도호부의 관아 건물로, 남양부사와 가족들이 거주한 내아(內衙)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풍화당 현재 건물은 1867년(고종4년)에 고쳐 지은 것으로 19세기의 전형적인 한옥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며, 2002년에 경기도의 문화재자료 제112호로 지정되었다. 남양풍화당은 크게 대문채와 ㄱ자 형태의 본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문채의 앞에는 풍화당(風化堂) 현판이 있고 뒤로는 와룡루(臥龍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와룡루는 남양도호부 관아의 정문으로 1899년에 발행된 남양군읍지(南陽郡邑誌)에 2층 누각 형태의 와룡루가 그려져 있으며 해당 현판은 바로 이 와룡루에 걸려 있던 것으로, 훗날 관아가 헐린 뒤 현판만 남.. 2022. 9. 8.
박세희(朴世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는 안곡서원(安谷書院)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에 위치하고 있는 안곡서원(安谷書院)은 조선후기 박세희(朴世熹)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고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안곡서원이 있던 자리는 원래 1666년(현종7년)에 남양 현감으로 부임한 민시중이 지방 유림의 의견에 따라 기묘사화로 귀양을 간 박세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안곡사(安谷祠)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안곡사(安谷祠)는 그 후 박세희의 큰 형으로 향리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고 효행을 실천하며 존경을 받았던 박세훈(朴世勳)을 추가로 사당에 모셨으며, 1697년에는 영의정을 지낸 홍섬(洪暹)을 추가로 모시고 배향하였다. 안곡사는 1721년(경종1년)에 임금이 사당ㆍ서원ㆍ누문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扁額)을 내린 사액(賜額)받아 서원이 되었으.. 2022. 9. 6.
옛 양주목(楊州牧) 관아를 복원한 양주관아(楊州官衙)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위치한 양주관아(楊州官衙)는 현재의 위치에 1506년에 설치되어 417년 동안 양주목(楊州牧)을 다스리던 관청이 있었던 관아 터였다고 한다. 복원된 관아 자리는 목사(牧使)의 정청(政廳)이었던 매학당(梅鶴堂)이 있었던 곳으로, 매학당은 목사가 정무를 보던 외동헌과 가족이 생활하던 내동헌으로 이루어져 있는 20여 칸 정도의 규모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목(牧)이 설치된 곳은 경기도의 양주(楊州)를 비롯하여 광주ㆍ여주ㆍ파주 등 네 곳과 충청도ㆍ경상도ㆍ전라도ㆍ황해도ㆍ강원도ㆍ평안도 등에 모두 20개 지역이었다고 한다. 양주목 관아와 청심루는 일제 강점기에 각각 군수 관사와 학교로 사용되었으며 1922년에 의정부에 있는 양주군청으로 이전될 때까지 사용된 관아 터였으며, 1945년 해방 후 .. 2022. 8. 24.
회암사(檜巖寺) 언덕에 자리한 부도비(浮屠碑)와 석등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위치한 회암사(檜巖寺)는 옛 회암사가 폐사된 후 1821년에 지공(指空)ㆍ나옹(懶翁)ㆍ무학(無學) 등 세 승려의 부도(浮屠)와 비(碑)를 중수하면서, 옛터에서 500m 위쪽에 작은 절을 짓고 회암사의 절 이름을 계승하고 있다. 회암사 언덕 위에는 지공선사 부도비(指空禪師 浮屠碑)와 석등을 비롯하여 무학대사탑(無學大師塔)과 쌍사자석등ㆍ무학대사비(無學大師碑), 나옹선사 부도비(懶翁禪師 浮屠碑)와 석등 등 다수의 문화재가 자리하고 있다. 지공선사(指空禪師)는 인도 출신의 고승(高僧)으로 1326년(충숙왕 13년)부터 약 2년간 고려에 머물면서 당시 불교사상과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고승이다. 지공선사 부도비(指空禪師 浮屠碑)는 지공선사의 유래를 기록한 비이며, 원래의 부도비에는 이색(.. 2022. 8. 23.
조선초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컸었던 사찰, 회암사(檜巖寺)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에 위치한 회암사(檜巖寺)는 인도에서 원(元)를 거쳐 고려에 들어와 1326년(고려 충숙왕 13년)부터 1328년까지 머물렀던 지공(指空)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나 정확한 창건연대와 창건주는 알 수 없다고 전해진다. 회암사는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규모가 가장 컸었던 절이었으며, 1424년(세종 6년)의 기록을 보면 이 절에는 250명의 승려가 있었고 사찰규모가 1만여 평에 이르렀다고 한다. 회암사는 1566년(명종 21년) 이후 불교를 배척하는 유생들의 방화로 불타고 사세(寺勢)가 기우러져 폐사되었으며 1821년(순조 21년)에 지공(指空)ㆍ나옹(懶翁)ㆍ무학(無學) 등 세 승려의 부도(浮屠)와 비(碑)를 중수하면서, 회암사 옛터에서 500m 위쪽에 작은 절을 짓고 회암사의.. 2022. 8. 22.
지방교육과 선현(先賢) 배향 공간, 양주향교(楊州鄕校)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 위치한 양주향교(楊州鄕校)는 조선 전기의 관립 교육기관으로,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ㆍ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1401년(태종 1년)에 창건되었다. 양주향교는 창건 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10년(광해군 2년)에 다시 세웠으나 6·25전쟁 때 폐허화 되었다가 1958년에 복원하였으며 1983년에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양주향교의 건물로는 배향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을 비롯하여 동무(東廡)와 서무(西廡), 강학공간인 명륜당(明倫堂), 그리고 내삼문(內三門)ㆍ외삼문(外三門) 등이 있다. 양주학교의 건물 배치를 보면 강학소인 명륜당(明倫堂)이 앞에 자리하고 제사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이 뒤에 자리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하고 있으며, 홍살문(紅箭.. 2022. 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