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를 보다보면 이 영화가 정말 ’배트맨‘ 시리즈 영화인가 의문이 갈 정도로 기존의 ’배트맨‘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별화를 시도한 점이 돋보인다.
이 영화의 특이한 점은 영화의 주인공인 배트맨(크리스찬 베일)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조연인 조커(히스 레저)가 주인공으로 착각할 만큼 이 영화에서의 배트맨 비중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조커의 캐릭터가 배트맨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퍼펙트 한 인물로 그려지고, 조커의 캐릭터에 의해 이 영화의 승패가 달려 있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히스 레저(Heath Ledger)의 신들린 듯한 카리스마가 한층 돋보이는 영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다크 나이트 촬영이 끝난 후 2008년 1월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고인(故人)이 되었으며, 사후 1년 만에 200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조커 역으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는 사실에 영화에서의 그의 모습과 실제 그의 모습이 오버랩(overlap) 되면서 더욱 더 애잔함이 더해진다.
이 영화는 또한 선과 악의 모호성이라든지, 진실과 거짓의 한계, 그리고 게임이론까지 들먹이며 유난스럽게 인간의 이중적 선택 문제를 다루고 있다.
어쩌면 이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였던 콘셉트일 수도 있겠지만 번번이 동전을 던져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노출하기도 한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는 인간의 선택을 강요하는 장면이 유독 많다.
배트맨의 연인 레이첼 도스(매기 질렌할)와 법을 통해 도시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비 덴트(아론 에크하트) 검사를 동시에 위험에 빠뜨리게 해 놓고 둘 중 선택한 한 사람만 살려 주겠다든지, 배트맨이 가면을 벗고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고담시민에 대한 살인을 멈추지 않겠다며 협박한다든지, 또한 서로를 폭파시켜야 살 수 있도록 한 배(船) 안에서의 게임 등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이 영화에서는 인간 심리에 대한 게임이 자주 등장한다. 게임이론 중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를 원용한 것도 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게임은 협력을 통해 서로가 이익이 되는 상황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불리한 상황을 선택하게 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게임이다. 따라서, 이 게임에서의 각각의 죄수는 상대방의 결과는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최대화한다는 가정 하에 움직이게 된다는 이론이다.
조커는 바로 이 게임을 미끼로 하여 인간의 불신과 이중성을 비웃으며 이를 즐기려 하기도 한다. 죄수들과 보통시민들을 각각 다른 배에 승선시켜놓고 각기 상대방의 배를 폭파 시킬 수 있는 스위치를 주고 1시간의 여유를 주겠다며 상대방의 배를 먼저 폭파시키라고 한다.
먼저 스위치를 누른 배는 살려주겠지만, 만일 상대방을 폭파하지 않으면 두 배 모두를 폭파시키겠다고 위협한다. 죄수들은 아우성을 치면서 살기를 원하고 시민들은 투표를 통해서 결정하자고 하며 갈등한다. 그러나 양쪽 모두는 약속된 1시간이 흘렀지만 결국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버튼을 누르지 못한 이유로는 일반시민과 죄수들이 다르지만, 결과는 상대방을 폭파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분히 미국적(美國的)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서 한층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는 순간, 무서운 표정의 한 죄수가 자신이 누르겠다며 간수에게서 스위치를 빼앗아 바다에 던져 버리는 장면에서는 감동적이라기보다는 그들만의 우월적 자만심(自慢心)을 보는 것 같아 웬지 쓴웃음이 절로 나기도 한다.
한편, 이 영화의 스토리가 그렇게 교과서적으로만 계속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자신처럼 힘에 의해 평화를 지키기 보다는 법을 통해 고담시를 구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배트맨은 하비 검사를 통해 위기에 처한 도시를 구원하고자 모든 기대를 그에게 걸어본다.
그러나 고담시의 새로운 희망이자 백기사 같은 존재인 하비 검사마저 얼굴 반쪽이 없어지는 화상(火傷) 앞에서는 악인으로 변해 갈 수 밖에 없는 모습에서 인간은 결국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공감하게 된다.
아무리 정의롭고 또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사회를 위해 신념에 차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가장 소중한 부분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오히려 보통사람보다 더 클 수도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영화 ‘다크 나이트’의 아쉬움이라면, 기존의 ‘~~맨’시리즈 영화치고는 재미보다는 관객의 심리적 선택을 요구하다보니 관람이 다소 부담스럽다는 점이며, 부담스럽다 못해 152분의 상영시간이 지루하기 까지 한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무정부주의를 지향하고 불신과 파괴만을 일삼는 혼돈의 화신으로 묘사하기 위한 궁여지책인가는 모르겠지만, 고담시를 혼란에 빠지게 하여 끝장내 버리겠다든지, 무고한 시민들을 계속해서 살인하겠다는 조커의 광기어린 협박 이유가 단지 배트맨의 가면을 벗기고 정체를 밝히기 위한 것이라든지, 조커를 너무 퍼펙트 한 캐릭터로 설정한 것 등은 너무 과장스러운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물론, 오프닝에서 시작되는 조커 갱단의 숨 막히는 은행털이 장면에서부터, 대형 트레일러 트럭과 배트맨의 신무기 오토바이와의 추격전 장면, 조커에 의해 설치된 폭약에 의해 건물 전체가 폭파되는 장면 등 전례 없이 화려한 비주얼이 돋보이고, 장대한 스케일과 액션, 그리고 온갖 스트레스를 함께 날려 버릴 것 같은 폭파 장면 등은 이 영화의 압권 중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Why So Serious? 이봐,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야. 나처럼 웃으라고, 내가 왜 항상 웃는 모습인지 알아? 아내는 늘 시무룩했어, 그런 아내에게 웃음을 찾아주고 싶었지. 그래서 내 입을 찢어 웃는 표정을 만들었어.”
아마도 조커의 이 대사가 이 영화에서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압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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