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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22

전통 한옥과 서양건축의 조화, 강화 온수리 성공회성당(聖公會聖堂)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강화 온수리 성공회성당(聖公會聖堂)은 1906년(대한제국 고종 43년)에 영국인 주교 마크 트롤로프(Mark N. Trollope, 한국명 조마가)가 지은 성당으로, 우리나라에 전래된 초기 서양 기독교의 교회양식을 볼 수 있는 목조건물이다. 성당 건물은 우리나라 전통적인 건축기법을 활용하여 종교적인 성당건축 방법과 공간 구성을 확립한 동서 절충식 강당형의 목조건물이며, 초기 성공회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종교사ㆍ건축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고 한다. 성당 건물은 초기 서양 기독교 양식의 2고주(高柱) 5양가(梁架)의 합각지붕 건물이며, 정면 9칸 측면 3칸의 본당과 정면 3칸 측면 1칸의 문루(종탑)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본채 건물의 외벽은 목조기둥이었다고 하나 현.. 2021. 2. 4.
강화산성(江華山城)의 남문(南門) 안파루(晏波樓)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남산리에 자리한 안파루(晏波樓)는 강화산성(江華山城)의 남문(南門)으로, 4개 대문의 각각 이름은 망한루(望漢樓)ㆍ첨화루(瞻華樓)ㆍ안파루(晏波樓)ㆍ진송루(鎭松樓)라 하였다. 강화산성(江華山城)은 고려시대의 성곽으로, 몽골의 제2차 침입으로 1232년에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도로 옮기고 대몽항쟁을 위하여 흙으로 쌓은 토성(土城)이었으며 사적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는 강화도로 천도한 후 궁궐을 지을 때 도성도 함께 쌓았는데 개성의 성곽과 비슷하게 내성(內城)ㆍ중성(中城)ㆍ외성(外城)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중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 현재의 강화산성이라 한다. 강화산성은 초기에는 토성으로 축조하였으나 조선 초기에 이르러 석성으로 개축하였으며, 이후 1637년(인조 15년) 병자호란 때.. 2021. 2. 3.
북한 땅이 눈앞에 바라보이는 월곶돈대(月串墩臺)와 연미정(燕尾亭)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월곶리에 있는 자리하고 있는 월곶돈대(月串墩臺)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한 돈대로, 1679년(숙종 5년)에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정비한 돈대로 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월곶돈대는 월곶진(月串鎭)에 속한 돈대로 규모는 동서 폭 47m 남북 폭 38m이며, 돈대 안에는 연미정(燕尾亭)이 있으며 서쪽 하단부에는 월곶진의 문루(門樓)인 조해루(朝海樓)를 복원하였다. 월곶돈대 안에 자리한 연미정과 함께 강화 8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곳은 한강과 북한의 임진강이 하나 되어 서해로 흐르는 곳으로, 사방으로 딱 트인 전망과 함께 달밤의 경치가 더욱 아름다운 절경을 이룬다고 한다. 월곶돈대는 남으로는 염하(鹽河)와 연결되고 북으로는 조강(祖江)을 통하여 서해로 진출할 수 있는 곳.. 2021. 1. 21.
[인천여행] 강화 가볼만한 곳(용유도ㆍ영종도ㆍ석모도ㆍ황산도) 인천시 강화군(江華郡)은 주 섬인 강화도를 비롯하여 교동도ㆍ석모도 등 큰 섬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용유도ㆍ영종도ㆍ석모도 모두 연륙교(連陸橋)가 건설되어 강화도에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용유도(龍遊島)에 가볼만 한 곳으로는 선녀바위가 있으며, 영종도(永宗島)에는 거잠포 선착장과 미시리해변 등이 있고, 석모도(席毛島)에는 보문사와 석모도 자연휴양림 등이 있다. 1. 용유도 선녀바위 인천시 중구 을왕동에 위치한 용유도(龍遊島)는 서해의 작은 섬으로, 옆에 있던 또 하나의 작은 섬이었던 영종도(永宗島)와 더불어 1995년에 간척공사를 함으로써 섬 아닌 섬으로 하나가 되었다. 용유도(龍遊島) 서쪽 끝 해변에 자리한 선녀바위는 해수욕장 바다 위에 우뚝 솟아있는 기암괴석(奇巖怪石.. 2020. 12. 5.
[인천여행] 강화 가볼만한 곳(교동도) 인천시 강화군(江華郡)은 강화도를 비롯하여 교동도ㆍ석모도 등 큰 섬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교동도(喬桐島)는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지만 교동대교를 통해 강화도와 연결되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 교동도는 규모 약 47㎡ 면적으로 예성강ㆍ임진강ㆍ한강이 만나 형성된 조강하류에 위치한 작은 섬이며, 교동도에 가볼만한 곳으로는 연산군 유배지ㆍ교동읍성ㆍ교동향교ㆍ화개사 등 역사적 유적지와 대룡시장ㆍ고구저수지ㆍ난정저수지ㆍ교동도 남산포구ㆍ월산포 선착장 등 자연환경이 있다. 1. 연산군 유배지(燕山君 流配地) 인천시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의 화개산 중턱에 자리한 연산군 유배지(燕山君 流配地)는 죄인이 배소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집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둘리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두는 위.. 2020. 11. 28.
[인천여행] 강화 가볼만한 곳(돈대墩臺) 인천시 강화군(江華郡)은 주 섬인 강화도를 비롯하여 석모도ㆍ교동도 등 큰 섬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재 1읍 12면의 행정구역으로 편성되어 있다. 강화도에 가볼만한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는 돈대(墩臺)을 들 수 있으며, 돈대는 성벽 위에 석재 또는 전(塼)으로 쌓아올려 망루(望樓)나 포루(砲樓)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누대(樓臺)를 말하며 강화에 총 53개(2개소는 후에 폐쇄)의 돈대가 있다. 1. 광성돈대(廣城(墩臺)와 광성보(廣城堡)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광성돈대(廣城(墩臺)는 광성보에 딸린 원형의 성축 돈대로, 성문인 안해루(按海樓)가 있으며 신미양요 때 파괴되었으나 1977년에 당시에 사용하였던 포좌 4개소와 소포 3문을 돈대 안에 복원하여.. 2020. 11. 14.
제단처럼 정방형의 독특한 형태, 강화 후애돈대(後崖墩臺)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 위치한 후애돈대(後崖墩臺)는 1679년(숙종 5년)에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강화 해안방어를 목적으로 함경도ㆍ황해도ㆍ강원도 삼도의 승군(僧軍) 8,900명과 어영군(御營軍) 4,300명을 동원하여 80일 만에 축성한 돈대 중 하나라고 한다. 후애돈대의 형태는 화강암을 정방형으로 쌓고 4개의 대포를 올려놓는 포좌를 설치하였으며, 성 위로 낮게 쌓은 여장(女墻)의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없어진 부분을 1998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돈대(墩臺)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설치하는 초소로, 강화 돈대는 섬 전체에 마치 톱니바퀴처럼 둘러쌓은 진지로써 총 53개(2개소는 후에 폐쇄)의 돈대를 설치ㆍ관리하였다.. 2020. 6. 3.
정족산성(鼎足山城) 기슭에 자리한 전등사(傳燈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의 정족산성(鼎足山城) 기슭에 자리한 전등사(傳燈寺)는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등사(傳燈寺)는 한국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량으로,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眞宗寺)라 하였으나 전등사라는 이름은 고려 후기 충렬왕 때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전등사는 1907년 이동휘를 중심으로 400여명의 강화도 군민들이 모여 대규모 반일 집회를 개최한 곳이었으며, 이능권이 대동창의진(大東倡義陣)을 조직하여 항일전을 펼친 곳이다. 전등사는 또한, 1908년에 강화 의병이 이능권의 지휘아래 이틀간 일본군 70여명과 정족산 전등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승리한 곳이라고 한다. 전등사 동종은 .. 2020. 6. 1.
강화 정족산(鼎足山) 사고지(史庫址)와 삼랑성(三郎城)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강화 정족산(鼎足山) 사고지(史庫址)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인 장사각(藏史閣)과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璿源譜閣)이 있던 곳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사고(史庫)는 내사고(內史庫)인 춘추관과 외사고(外史庫)인 충주ㆍ성주ㆍ전주 등 3사고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만 화를 면하고 모두 소실되었으며, 그 후 화를 면한 전주사고본이 한양에서 가까운 강화로 옮겨져 1606년(선조 39년)에 복인(復印)작업을 완료하고, 전주사고본인 원본을 마니산 사고로 옮기고 나머지 4부는 춘추관ㆍ태백산ㆍ묘향산ㆍ오대산 사고에 이안되었다. 마니산 사고는 병자호란과 사각(史閣) 실화사건으로 삼랑성 내 정족산(鼎足山) 사고가 건립되어 이안 봉안되어 왔으나,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 2020. 5. 29.
천애(天涯) 절벽의 요새, 분오리 돈대(分五里 墩臺) 강화군 화도면에 위치한 분오리 돈대(分五里 墩臺)는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36호로 1994년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분오리 돈대는 조선 숙종 5년(1676년)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 가 설치한 여러 돈대 중 하나이며, 대포 4문을 올려놓는 포좌와 톱니바퀴 모양으로 돌출시킨 치첩(雉堞)이 37개소가 있는 초지진의 외곽 포대이다... 이 돈대는 동ㆍ서ㆍ남벽은 바다에 면한 천애(天涯) 절벽의 요새(要塞)로써, 서쪽의 송곶돈대까지 거리는 3.1km로서 영문에서 돈장(墩將)을 따로두어 지키게할 만큼 중요한 돈대였다고 한다... 분오리돈대 아래에 위치한 동막해수욕장 2009.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