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기도716 임진강 위에 축조된 고구려의 성, 연천 호로고루성(瓠蘆古壘城)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에 위치한 호로고루성(瓠蘆古壘城)은 임진강 북안(北岸)의 얕은 구릉(丘陵) 위에 축조된 고구려의 성으로, 남한지역에서는 얼마 되지 않는 고구려 유적이라고 한다. 호로고루성은 삼각형을 이루는 지형의 한쪽에만 지상성벽을 쌓아 구축하였던 성으로, 고구려가 남진을 하기 위해 육로로 내려오는 최단 코스로 남진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호로고루성의 둘레는 401m로 크지 않지만 남쪽과 북쪽은 현무암 절벽을 성벽으로 이용하고, 평야로 이어지는 동쪽에만 너비 40m 높이 10m 길이 90m 정도의 성벽을 쌓아 삼각형 모양의 성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수차례의 발굴조사 결과 성 내부에서 건물지(建物址)와 수혈유구(竪穴遺構)ㆍ대규모 석축집수지ㆍ우물ㆍ목책(木柵) 등 다양한 유구와 연화문와당ㆍ.. 2020. 6. 11. 신라 마지막 왕의 능(陵), 연천 경순왕릉(敬順王陵)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위치한 경순왕릉(敬順王陵)은 신라 마지막 제56대 경순왕(敬順王)의 능으로, 신라 왕릉 가운데 경주지역을 벗어나 경기도에 있는 유일한 신라 왕릉이라 한다. 경순왕의 전체적인 형태는 조선후기 사대부 묘소의 전형적인 격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왕릉의 강(岡)이 조성되어 있을 뿐 주변의 석물들은 모두 조선 영조 때 만든 것이라 한다. 경순왕릉은 높이 3m 지름 7m의 둥글게 흙을 쌓아올린 원형 봉토분(封土墳)으로 판석(板石)을 이용해 둘레돌을 돌렸으며, 고려시대 왕릉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곡장(曲墻)이 둘려져 있다. 능 앞에 혼유석(魂遊石)이 놓여있고 ‘신라경순왕지릉(新羅敬順王之陵)’이라고 새긴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뒷면에 있는 비문의 내용에 의하여 경순왕의 무덤임이 확인되었으며.. 2020. 6. 10. 제단처럼 정방형의 독특한 형태, 강화 후애돈대(後崖墩臺)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 위치한 후애돈대(後崖墩臺)는 1679년(숙종 5년)에 강화유수 윤이제(尹以濟)가 강화 해안방어를 목적으로 함경도ㆍ황해도ㆍ강원도 삼도의 승군(僧軍) 8,900명과 어영군(御營軍) 4,300명을 동원하여 80일 만에 축성한 돈대 중 하나라고 한다. 후애돈대의 형태는 화강암을 정방형으로 쌓고 4개의 대포를 올려놓는 포좌를 설치하였으며, 성 위로 낮게 쌓은 여장(女墻)의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없어진 부분을 1998년에 복원하였다고 한다. 돈대(墩臺)는 적의 움직임을 살피거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영토 내 접경지역이나 해안지역의 감시가 쉬운 곳에 설치하는 초소로, 강화 돈대는 섬 전체에 마치 톱니바퀴처럼 둘러쌓은 진지로써 총 53개(2개소는 후에 폐쇄)의 돈대를 설치ㆍ관리하였다.. 2020. 6. 3. 강화도의 작은 섬 황산도의 황산포구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위치한 황산도(黃山島)는 강화도 옆에 딸린 작은 섬으로, 강화도와 황산도를 잇는 약 500여m의 연륙교가 생기기 전에는 강화도의 또 다른 작은 섬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강화도의 초지진은 군사적으로 강화 외성의 최남단으로 그 중요성이 예전부터 부각되었으나, 황산도는 그에 비해 섬 밖의 섬으로 수 백년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곳이라고 한다. 황산도는 썰물 때가 되면 바닷물이 수 ㎞까지 빠져나가 갯벌이 천연 선착장을 만들어주었으며, 연륙교가 생기기 전에는 배들이 지금의 연륙교 바로 앞 갯벌에 되는 대로 배를 대고 생선을 풀었다고 한다. 황산도는 원래 대황산도와 소황산도라는 두 개의 섬이었는데 1962년에 하나로 이어졌으며, 이 후 김포와 강화도를 잇는 초지대교가 건설되면서 관심.. 2020. 6. 2. 정족산성(鼎足山城) 기슭에 자리한 전등사(傳燈寺)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의 정족산성(鼎足山城) 기슭에 자리한 전등사(傳燈寺)는 381년(고구려 소수림왕 11년)에 진나라에서 건너온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등사(傳燈寺)는 한국불교 전래 초기에 세워진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도량으로, 창건 당시에는 진종사(眞宗寺)라 하였으나 전등사라는 이름은 고려 후기 충렬왕 때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전등사는 1907년 이동휘를 중심으로 400여명의 강화도 군민들이 모여 대규모 반일 집회를 개최한 곳이었으며, 이능권이 대동창의진(大東倡義陣)을 조직하여 항일전을 펼친 곳이다. 전등사는 또한, 1908년에 강화 의병이 이능권의 지휘아래 이틀간 일본군 70여명과 정족산 전등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여 승리한 곳이라고 한다. 전등사 동종은 .. 2020. 6. 1. 강화 정족산(鼎足山) 사고지(史庫址)와 삼랑성(三郎城)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에 위치한 강화 정족산(鼎足山) 사고지(史庫址)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인 장사각(藏史閣)과 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각(璿源譜閣)이 있던 곳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사고(史庫)는 내사고(內史庫)인 춘추관과 외사고(外史庫)인 충주ㆍ성주ㆍ전주 등 3사고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전주사고만 화를 면하고 모두 소실되었으며, 그 후 화를 면한 전주사고본이 한양에서 가까운 강화로 옮겨져 1606년(선조 39년)에 복인(復印)작업을 완료하고, 전주사고본인 원본을 마니산 사고로 옮기고 나머지 4부는 춘추관ㆍ태백산ㆍ묘향산ㆍ오대산 사고에 이안되었다. 마니산 사고는 병자호란과 사각(史閣) 실화사건으로 삼랑성 내 정족산(鼎足山) 사고가 건립되어 이안 봉안되어 왔으나,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 2020. 5. 29. 우리꽃이 살아 숨쉬는 우리꽃식물원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매곡리에 위치한 우리꽃식물원은 우리 꽃의 종 다양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교육적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설립하였다는 공립수목원이다. 우리꽃식물원은 사계절관 유리온실을 비롯하여 생태연못ㆍ우리꽃 전시관ㆍ식물덩굴원ㆍ약용원ㆍ석림원ㆍ야외 화단ㆍ숲속체험관 등 128,213㎡의 규모에 1,100여종의 식물들이 살아 숨쉬는 식물원이라 한다. 우리꽃식물원은 우리꽃 전시관을 통해 우리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고, 계절행사 등 볼거리와 은행나무 산책로ㆍ숲속 쉼터 등에서 자연을 만끽하며 즐길 수 있는 휴식공간이라 한다. 유리온실에는 특히, 4계절 관람을 위해 백두산ㆍ한라산ㆍ지리산ㆍ설악산ㆍ태백산 등 5개의 산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높이별로 식물을 관찰할 수 있으며 총 580여 종을 식재하였다고 한다. 우리꽃식물원.. 2020. 5. 25. 물 떨어지는 소리가 종소리처럼 들렸다는 수종사(水鐘寺)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雲吉山) 중턱에 위치한 수종사(水鐘寺)는 정약용의 유수종사기(遊水鍾寺記)에 의하면 신라 때 창건한 사찰이라 전하고 있지만 근거자료는 없다고 한다. 경내에는 대웅보전(大雄寶殿)ㆍ산신각(山神閣)ㆍ응진전(應眞殿)ㆍ경학원(經學院)ㆍ선불장(選佛場)ㆍ삼정헌(三鼎軒) 등의 건물과 팔각오층석탑ㆍ수종사 부도ㆍ약사여래불상 등이 있다. 수종사는 여러 해를 거치면서 중창을 거듭하였으나 6.25전쟁 때 모두 소실되었으며, 1975년 혜광(慧光)스님이 대웅보전을 복원하여 사세를 확장하였고 1999년에 주시 동산(東山)이 선불장과 삼정헌을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수종사 언덕에 올라 바라보는 북한강 풍광은 특히 빼어나며,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이 솟아 있고 한강으로 합류하기 직전의 두물머리.. 2020. 5. 18. 산나물과 야생화가 가득한 두메향기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에 자리한 산나물 두메향기는 산나물을 통해 친환경 먹거리 문화를 만들고, 자연과 함께 휴식할 수 있는 복합휴양공간의 숲속정원이다. 두메향기는 오대산의 중앙 맥이 이어진 치악산을 지나 용문산ㆍ유명산ㆍ중미산의 맥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청계산 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맞은편에는 달덩어리봉이 자리해 두메향기를 에워싸고 있다. 두메향기는 옛날 화전민들이 일구었던 첩첩산골짜기의 층층으로 된 좁고 작은 곳이었으며, 두메향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산나물 체험스쿨ㆍ야외 체험장ㆍ전통항아리정원ㆍ푸르내 폭포 등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공원 내에는 우리의 전통 항아리를 만날 수 있는 항아리정원을 비롯하여 푸르내 폭포ㆍ온실 정원 휴(休)ㆍ카페 락(樂) 등 다양한 휴식공간이 있으며, 마루길ㆍ늘솔길ㆍ사색의 길 등 .. 2020. 5. 11. 강화해안 외곽초소 겸 포대, 용두돈대(龍頭墩臺)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용두돈대(龍頭墩臺)는 용머리처럼 돌출한 자연 암반 위에 설치된 천연적인 외곽초소 겸 포대였다고 한다. 돈대 입구에는 해안을 수비하던 광성포대가 위치하고 있으며, 중앙에는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江華戰蹟地淨化記念碑)와 함께 기념비 양 옆에는 당시에 사용하였다는 홍이포(紅夷砲) 2문이 전시되어 있다. 용두돈대는 광성보(廣城堡)에서 해안숲길을 따라가다 보면 수심이 가장 빠르고 폭이 좁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1679년에 세워져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전개되었던 곳이라 한다. 용두돈대는 손돌목 돈대에 속해 있으며, 1871년(고종 8년)에 광성포대가 설치되면서 정비되었으며, 이후 1977년에 강화전적지 보수사업으로 성벽을 복원하면서 용두돈대라 부르게 되었다. 2020. 5. 8. 신미양요의 격전지, 강화 손돌목돈대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손돌목돈대는 강화해협을 지키는 해안가의 중요한 방어시설 중 하나로, 현재 광성보(廣城堡)에 속해있는 3개의 돈대 중 하나이다. 손돌목돈대는 1679년(숙종 5년)에 축조된 돈대로, 원래 덕진돈대와 함께 덕진진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광성보 내에 위치해 있다. 손돌목돈대는 구릉 정상부에 위치해 있으며, 다른 돈대와는 달리 둥그렇게 쌓인 돈대이며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가 있었다고 한다. 손돌목돈대는 성곽 길이 108m 넓이 778㎡ 규모이며, 1871년(고종 8년) 신미양요 때에는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기도 하다. 손돌목돈대는 특히, 신미양요 전투 때 조선군 사령관인 어재연 장군이 직접 지휘하며 격렬하게 반격을 가하던 요새.. 2020. 5. 7. 강화 광성보(廣城堡)와 광성돈대(廣城墩臺) 인천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에 위치한 광성보(廣城堡)는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으로, 강화해협을 지키는 해안가의 중요한 요새였다고 한다. 강화도에는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적을 막기 위한 군사시설로 5진(鎭)ㆍ7보(堡)ㆍ54돈대(墩臺)로 요새화 하였으며, 이들 시설 중 진(鎭)의 규모가 보(堡)보다는 크고, 진과 보 아래에 돈대를 두어 관리하게 하였다고 한다. 안해루(按海樓)는 광성보의 성문이며, 돈대(墩臺)는 외적의 침입이나 척후활동을 사전에 관찰하고 대비할 목적으로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의 방어시설을 말한다. 광성돈대(廣城墩臺)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 중 하나로, 1679년(숙종 5년)에 함경도ㆍ황해도ㆍ강원도의 승군 8,000여명과 어영군 4,300여명.. 2020. 5. 6. 이전 1 ··· 38 39 40 41 42 43 44 ··· 6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