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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26

문정왕후의 태릉(泰陵), 명종과 인순왕후의 강릉(康陵)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자리하고 있는 태릉(泰陵)은 조선 중종(中宗)의 계비 문정왕후(文定王后)의 능(陵)이며, 그 옆에 자리한 강릉(康陵)은 문정왕후의 아들인 명종(明宗)과 인순왕후(仁順王后)의 능이다. 태릉과 강릉은 원래 한 울타리 안에 있었지만 1965년에 태릉선수촌이 중간에 건립되면서 별도로 떨어져 자리하고 있으며, 태릉과 강릉을 연결하는 숲길(총 1.8km)이 있으나 현재는 통제되어 있으므로 숲길이 아닌 시내로 돌아서 가야 한다.  태릉은 봉분 1기만 있는 단릉(單陵)이며, 조선 왕릉 중에서 봉분 1기만 단독으로 있는 무덤으로는 중종의 정릉과 단종의 장릉, 그리고 태조의 건원릉 등이 있다. 태릉은 구름무늬(雲彩)와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새겨진 병석(屛石)을 둘렀고, 석인(石人)의 조각은 목이 .. 2025. 1. 10.
나무숲길이 있는 조선왕릉 삼릉공원, 선정릉(宣靖陵)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선정릉(宣靖陵)은 조선 제9대 성종(成宗) 및 계비 정현왕후(貞顯王后) 윤씨를 모신 선릉(宣陵)과 조선 제11대 중종(中宗)을 모신 정릉(靖陵)이 자리하고 있다. 선정릉은 왕릉이 세 개 있다고 하여 삼릉공원(三陵公園)으로 불리기도 하며, 약 7만여 평의 면적에 송림과 잡목이 들어 서 있으며 사적 199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릉(靖陵)은 조선 제11대 중종(中宗)을 모신 왕릉으로, 중종은 원래 서삼릉 내의 제1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가 묻힌 곳에 합장하였으나, 1562년(명종 17년)에 중종을 현 위치로 천장(遷葬)하였다. 정릉의 시설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준했으므로 선릉과 비슷하며, 구름무늬의 12지(支) 신상(神像)이 새겨진 병풍석을 돌리고 있으며, 정릉에 세워.. 2024. 11. 29.
조선 최대의 왕릉군(王陵群), 동구릉(東九陵)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위치한 동구릉(東九陵)은 조선 최대의 왕릉군(王陵群)으로 9릉(陵) 17위(位)의 왕과 왕비, 그리고 후비(后妃) 등이 안장되어 있는 조선왕릉이다. 동구릉은 1408년(태종 8년)에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 터로 쓰이기 시작한 뒤로, 조선시대 일대를 통해 족분(族墳)을 이루고 있으며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구릉은 태조(太祖)의 건원릉(健元陵)을 시작으로 문종(文宗)의 현릉(顯陵), 선조(宣祖)의 목릉(穆陵), 현종(顯宗) 숭릉(崇陵), 장렬왕후(莊烈王后) 휘릉(徽陵), 단의왕후(端懿王后) 혜릉(惠陵), 영조(英祖) 원릉(英祖), 헌종(憲宗) 경릉(景陵)이 차례로 조성되었으며 당시 능의 개수에 따라 동오릉ㆍ동칠릉 등으로 불리다 1855년 문조(文祖)의.. 2023. 9. 28.
영릉ㆍ순릉ㆍ공릉이 자리한 파주 삼릉(坡州 三陵)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에 자리한 파주 삼릉(坡州 三陵)은 공릉(恭陵)ㆍ순릉(順陵)ㆍ영릉(永陵)의 3능이 있는 곳으로, 왕릉군의 앞머리를 따서 공순영릉(恭順永陵)으로도 불린다. 영릉(永陵)은 영조(英祖)의 장자로 황제로 추존된 진종(眞倧)과 그의 비(妃) 효순황후(孝純皇后) 조씨(趙氏)의 능으로, 세자와 세자빈의 예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매우 간소하고 아담하며 왕릉(王陵)과 비릉(妃陵)을 나란히 한 쌍릉(雙陵)으로 곡장을 둘렀다. 진종(眞倧)은 영조의 아들이며 처음 경의군(敬義君)으로 봉해졌다가 영조가 즉위한 이듬해 1725년(영조 1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728년(영조 4년)에 10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왕세자에게 효장세자(孝章世子)라는 시호를 내렸고 이곳에 묘를 조성하였으며, .. 2023. 6. 30.
태조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능, 정릉(貞陵)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정릉(貞陵)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아내이면서 조선 최초의 왕비인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능(陵)이다. 정릉은 1409년(태종 9년)에 처음 조성한 후 1669년(현종 10년)에 다시 조성한 단릉 형식이며 능침에는 문석인ㆍ석마ㆍ장명등ㆍ혼유석ㆍ망주석ㆍ석양ㆍ석호를 배치하였다. 정릉은 일반 조선왕릉과 달리 직선축이 아닌 자연 지형에 맞추어 절선축으로 조성되었으며, 능침아래에는 홍살문ㆍ정자각ㆍ수복방ㆍ수라간ㆍ비각 등이 있다. 정릉의 장명등과 혼유석을 받치는 고석만이 조성 당시의 것이고 나머지 석물들은 현종 대에 다시 조성하였으며, 장명등은 고려 공민왕릉의 양식을 따른 것으로 조선시대 능역의 가장 오래된 석물인 동시에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한다. 신덕왕후가 1396년(태.. 2023. 1. 18.
사도세자 장조와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의 능, 융릉(隆陵)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자리한 융릉(隆陵)은 사후 왕으로 추존된 장조((莊祖)와 그의 비(妃)인 혜경궁 홍씨 헌경왕후(獻敬王后)의 합장릉으로 사적 제206호이다. 장조의 무덤은 원래 경기도 양주의 배봉산(서울 휘경동) 아래에 있었는데 정조가 수원화산으로 이장하면서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고, 장조로 추존된 후에는 능호를 융릉(隆陵)으로 높였다. 장조는 1735년(영조 11년)에 창경궁에서 태어나 그 이듬해에 세자에 책봉되었고 1749년(영조 25년) 부왕을 대신하여 대리청정을 하다가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노론들과 정순왕후 등의 무고에 의해 1762년(영조 38년)에 뒤주 속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세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로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고 묘호를 수은묘(垂恩廟)라 하였으며, 정.. 2022. 9. 15.
정조와 효의왕후의 능, 건릉(健陵) 경기도 화성시 안녕동에 자리한 건릉(健陵)은 정조(正祖)와 효의왕후(孝懿王后)의 동릉이실(同陵異室) 합장릉이며, 병풍석 없이 난간만 두르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융릉(隆陵)의 예를 따랐다. 건릉은 원래 생부인 장헌세자(莊獻世子)의 현릉원 동쪽에 능을 조성하였던 것을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1821년에 현재의 위치에 이장하여 효의왕후를 합장하였다. 건릉은 합장릉이지만 혼유석(魂遊石) 1좌만 놓았고 장명등(長明燈)을 세웠으며, 문무석의 조각이 사실적이고 안정감이 있는 빼어난 작품으로 19세기 능석물제도(陵石物制度)의 새로운 표본을 세웠다고 한다. 건릉은 동ㆍ서ㆍ북 3면에 곡장(曲墻)에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둘렀으며, 석물은 난간석 바깥으로 석호와 석양을 각각 4기씩 배치하여 봉분을 호위하고 .. 2022. 9. 14.
서삼릉(西三陵)의 희릉(禧陵)과 예릉(睿陵)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한 서삼릉(西三陵)에는 희릉(禧陵)ㆍ예릉(睿陵)ㆍ효릉(孝陵)의 삼릉(三陵)과 의령원(懿寧園)ㆍ효창원(孝昌園)ㆍ소경원(昭慶園), 그리고 회묘(懷墓) 등 후궁 묘역과 왕족 태실군 등이 있다. 서삼릉은 단일지역으로는 조선시대 가장 많은 왕실 묘소가 자리해 있는 묘역이며, 인조의 효릉과 소경원은 출입금지구역이고, 회묘 등 후궁 묘역과 왕족 태실은 예약으로 관람할 수 있다. 희릉(禧陵)은 중종(中宗)의 두 번째 왕비인 장경왕후(章敬王后) 윤씨의 능으로, 처음에는 태종의 헌릉 서쪽 언덕에 조성되었다가 1537년(중종 32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중종이 1544년에 세상을 떠나자 희릉 옆 언덕(현 철종 예릉 자리)에 중종의 능이 조성되어 정릉(靖陵)이 되었으나, 1562.. 2022. 6. 7.
서삼릉(西三陵)의 후궁 묘역과 왕족 태실(胎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위치한 서삼릉(西三陵)은 단일지역으로는 조선시대의 가장 많은 왕실 묘소가 위치해 있는 묘역이며,인조대왕의 효릉은 아직도 출입금지구역이다. 서삼릉에는 예릉(睿陵)ㆍ희릉(禧陵)ㆍ효릉(孝陵)의 삼릉(三陵)과 소경원(昭慶園)ㆍ의령원(懿寧園)ㆍ효창원(孝昌園) 등이 있으며 그리고 비공개지역인 회묘(懷墓) 등 후궁 묘역과 왕족 태실군 등은 예약으로 관람할 수 있다. 회묘(懷墓)는 성종(成宗)의 계비(繼妃)이면서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묘이며, 원래는 경기도 장단군에 묻힌 것을 연산군이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으로 천장(遷葬)하였으며 이후 1969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연산군이 즉위한 후 묘의 이름을 폐비지묘(廢妃之墓)에서 회묘라 하고 윤씨의 제사를 허락하였으며, 1504년.. 2022. 6. 3.
순종황제와 순명황후ㆍ순정황후의 유릉(裕陵)과 영원(英園)ㆍ회인원(懷仁園)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자리한 유릉(裕陵)은 대한제국의 순종황제와 그의 비(妃) 순명황후 민씨(純明皇后 閔氏)와 계비(繼妃) 순정황후 윤씨(純貞皇后 尹氏)의 능으로, 조선왕릉 중 유일하게 세 분이 합장된 능이다. 유릉(裕陵)은 홍릉과 합칭(合稱)하여 홍유릉(洪裕陵)이라 불리며, 인근에는 영원(英園)ㆍ회인원(懷仁園)을 비롯하여 덕혜옹주묘ㆍ의친왕묘 등 대한제국 마지막 왕손들의 무덤이 있다. 유릉은 홍릉과 마찬가지로 왕이 황제가 됨으로써 능역 조성도 명(明)나라 태조의 효릉(孝陵)을 본받아 구조물을 대폭 확장하였으며, 종래의 정자각 대신 '一'자형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寢殿)을 세웠다. 능침의 호석(護石)인 양석(羊石)ㆍ호석(虎石) 대신 능침 앞에서부터 홍살문까지 기린ㆍ코끼리ㆍ해태ㆍ사자ㆍ낙타ㆍ말의 .. 2021. 7. 23.
고종(高宗)과 명성황후의 홍릉(洪陵)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자리한 홍릉(洪陵)은 고종(高宗)과 그의 비(妃)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 閔氏)의 능이며, 옆에 있는 유릉(裕陵)과 합칭(合稱)하여 홍유릉(洪裕陵)이라 불리며 사적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고종은 1919년에 홍릉(洪陵)에 초장 봉릉(初葬 封陵)되었으며, 명성황후는 1895년에 청량리 홍릉(현재 숭인원)에 장사하였다가 1919년에 현재의 홍릉으로 이장하여 합장(合葬)한 동봉이강릉(同封異岡陵)이다. 홍릉의 특징은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선포되고 왕이 황제가 됨으로써 능역 조성도 명(明)나라 태조의 효릉(孝陵)을 본받아 구조물을 대폭 확장하였으며, 종래의 정자각 대신 '一'자형의 정면 5칸 측면 4칸의 침전(寢殿)을 세웠다. 능침의 호석(護石)인 양석(羊石)ㆍ호석(虎石) 대신 능침 앞에.. 2021. 7. 22.
봄비 내리는 날의 파주 삼릉(坡州 三陵)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리에 자리한 파주 삼릉(坡州 三陵)은 공릉(恭陵)ㆍ순릉(順陵)ㆍ영릉(永陵)의 3능이 있는 곳으로, 왕릉군의 앞머리를 따서 공순영릉(恭順永陵)으로도 불린다. 공릉(恭陵)의 장순왕후(章順王后)와 순릉(順陵)의 공혜왕후(恭惠王后)는 모두 한명회(韓明澮)의 딸이며, 왕실로 출가한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하지는 못하였으며 단명하였다. 공릉(恭陵)은 1472년(성종3년)에 왕후로 추존된 조선 예종(睿宗)의 원비 장순왕후(章順王后) 한씨(韓氏)의 능으로, 처음에는 왕후릉이 아닌 세자빈묘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소박하며, 병풍석ㆍ난간ㆍ망주석ㆍ무인석(武人石) 등이 없다. 공릉은 아래쪽의 홍살문에서 정자각에 이르는 참도(參道)가 조선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ㄱ자로 꺾여 있는 것이 특징이며, 지형조건 때문.. 2021. 5. 18.